1978년 3월2일 문동일씨가 통영시 산양면 미남리 달아마을에서 50m정도 떨어진 해저에서 발견하여 매장문화재로 신고, 1978년 10월 26일 국고에 귀속된 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완구(碗口)는 지금의 박격포와 같은 화포로 조선시대 초기인 세종 때는 총통완구뿐이었으나 중기에 접어들면서 대완구 중완구 소완구 소소완구 등으로 발전되었으며 돌로 만든 단석이나 비격진천뢰를 발사하였다.
중완구의 구조는 둥근 돌이나 비격진천뢰를 올려놓을 수 있는 그릇인 완(碗), 화약이 폭발할 때 생겨나는 폭발력을 최대로 완에 있는 발사물에 전달해 주는 나무를 박은 격목통, 화약을 재워놓은 약통의 세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격목통은 완과 약통의 중간에 위치하며 약통에는 점화선을 끼우는 구멍이 2개가 있다.
화포식언에는 중완구는 화약 13냥이 필요하고 격목이 4치이며 단석을 올려놓는데 무게는 34근 사정거리 500보라 기록되어 있다 (듕완구애 듕약션이 반오리오, 화약이 열석냥이오 격목이 네치니 단셕을 노흐라 돌므긔 셜흔너근이니 오보 가니라)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의 중완구는 1978년 3월 2일 통영의 어부 문동일씨가 통영시 산양면 미남리 달아 마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발견하여 매장 문화재로 신고, 1978년 10월 26일 국고에 귀속된 후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오랫동안 바다 밑에 있었기 때문인지 부식이 심하여 명문을 판독할 수 없다. 그러나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완구(보물 제858호)와 형태나 크기가 같은 점으로 미루어 1575년(선조 8년)부터 1605년(선조 3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해저에서 인양되어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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